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

🔖 우리의 현재는 나비처럼 충분했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그리고 곧 사라질 만큼 아름다웠다 ... 여름은 아주 짧았다 나는 당신의 연인이 아니다, 생각하던 무참한 때였다, 짧았다, 는 내 진술은 순간의 의심에 불과했다 길어서 우리는 충분히 울었다


🔖 신나게 웃는 거야, 라일락 / 내 생애의 봄날 다정의 얼굴로 / 날 속인 모든 바람을 향해 / 신나게 웃으면서 몰락하는 거야 // 스크랩북 안에 든 오래된 사진이 / 정말 죽어버리는 것에 대해서 / 웃어버리는 거야, 라일락, 아주 웃어버리는 거야


🔖 나의 출생지는 우연한 감염이었네 ... 우연한 감염 끝에 존재가 발생하다가 갑자기 뚝 끊겨버리는 적막의 1초 // 어디론가 가버린 태아들은 태어나지 않은 오후 5시에 흘러나올 검은 비 같은 뉴스를 들으며 구약을 읽을 거야 그 뒤에 흘러나올 빗물 같은 레게 음악을 들으며 바빌론 점성가들에게 문자를 보낼 거야 // 모든 우울한 점성의 별들을 태아 상태로 머물게 해요, 얼굴 없는 타락들로 가득 찬 계절이 오고 있어요, 라고


🔖 동쪽에는 지나가지 못하는 나라가 있고 // 이 도시 사람들은 동쪽을 바라보며 희망은 맨 마지막에 죽는 것이라고 했다, 마지막이라는 것이 너무나 뜨거워 잡을 수가 없을 때 희망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// 희망을 신뢰한 적은 없었으나 흠모하며 희망의 관광객으로 걸은 적은 있었지 별이 인간의 말인 희망을 긴 어둠의 터널에 가두고 먼지로 마셔버리는 것을 본 적도 있었지


🔖 푸른 별에는 당신의 눈동자를 가진 쥐가 산다고 나는 말했지요, 당신, 나와 쥐의 공동체를, 신화는 실험실에서 완성되는 이 불우한 사정을 말할 때 // 내 손을 잡아줄래요? / 피하지 말고 피하지 말고 / 내가 왜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/ 그 막연함도 들어볼래요? // 이건 불행이라고, 중얼거리면 / 모든 음악이 전쟁의 손으로 우리를 안아주는 그런 슬픈 이야기가 아닙니다 / 이건 사랑이라고, 중얼거리면 / 모든 음악이 검은빛으로 변하는 그런 처참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// 다만 손을 잡아달라는 간절한 몸의 부탁일 뿐입니다 / 내가 하지 않으면 내 기억을 가진 쥐가 당신에게 말할지도 모릅니다


🔖 얼어죽은 국회에게, 라는 편지도 맞아죽은 은행에게, 우주로 납치된 악몽에게, 달에 있는 나의 거대한 저택에게, 라고 시작되는 편지도 어떤 편지도, 아니 내가 끊임없이 편지를 쓰는 식물이라고 고백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